< 1984 >, George Orwell

WAR IS PEACE 전쟁은 평화

FREEDOM IS SLAVERY 자유는 예속

IGNORANCE IS STRENGTH 무지는 힘

- 작중 당의 구호


예전에 <왕좌의 게임> 드라마를 볼 때, 시즌 3에서 '피의 결혼식'이라는 에피소드를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아 해당화가 끝났었는데도 헤어나오지 못해 가만히 앉아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1984>를 다 읽은 순간의 느낌이 <왕좌의 게임>을 볼 때와는 아주 다르지만, 충격과 감정의 강도는 비슷했었습니다. 이런 감정을 '충격'이라는 식상한 단어로밖에 쓰지 못하는 제 표현력이 아쉬울 뿐입니다. 소설의 가치를 평가할 때 유명한 정도가 우선시되어서는 안 되지만, 작가나 그의 작품이 널리 알려져 있다면 그 역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지 오웰의 <1984>는 읽어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유명합니다. 소설을 읽기 전에, 저 역시 '빅 브라더'라는 존재가 모두를 지켜보는 어두운 사회가 배경이 된다는 것을 들어보았고, 마침 작중 시대 배경인 1984년에 애플이 "왜 1984년이 <1984>와 같지 않은지 직접 보실 겁니다."라는 의미심장한 광고와 함께 첫 매킨토시를 출시한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핵전쟁과 혁명으로 인해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라는 세 개의 거대 국가로 분열되었으며 이들은 동맹 관계와 적대 관계를 반복하면서 끝없는 전쟁을 하고 있지만, 의미 있는 전쟁을 하기보다는 서로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전쟁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세아니아를 통치하는 당인 INGSOC(영사. English Socialism, 영국 사회주의의 약자)은 우민화 정책, 기술을 통한 실시간 감시, 그리고 언어, 교육, 문화, 사상의 전체주의적 통제 등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프롤(노동자, prole.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의 줄임말)은 단순히 생산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되며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작중 시간대에서는 이미 우민화 정책이 놀라운 수준으로 성공하여 프롤들은 당에 의해 기계로 양산되는 의미 없는 소설과 노래, 포르노를 소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부 기관에서 일하는 당원들은 24시간 송수신이 되며 전원을 끌 수 없는 텔레스크린이 딸린 주택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어디에 가나 오세아니아의 최고 권력자 '빅 브라더'의 사진과 함께 "빅 브라더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라는 문장이 쓰여 있는 벽보가 붙어 있습니다. 프롤들과 다르게 당원들에게는 가족애나 연인 간의 사랑 같은 감정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으며, 아이들은 당에 표창을 받거나 당의 눈에 들기 위해 신세 한탄을 하거나 사소한 불평불만을 하는 부모들을 '사상경찰'에 넘겨 죄인으로 몰아가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성욕 역시 매우 저급하고 불경하며 에너지의 낭비를 일으키는 문제로 보아 당에서 통제하려고 노력합니다. 당에서는 또한 기존의 언어(구어 Oldspeak, 일반적인 영어)에서의 표현의 다양성이 정치적 반란 분자를 만들 수 있다 보았습니다. 역으로 당에 대한 반감이 일어나 이를 감정이나 사상으로 표현하려 해도, 그러할 어휘가 존재하지 않으면 결국 당에 반대하는 생각 자체가 말살되리라 판단하여, 문법을 간략화하고 어휘와 표현 가능성을 대폭 축소한 신어(Newspeak)를 만들어 공식 언어로 사용 중입니다. 신어에서는 유의어를 전부 없애고 단 하나의 단어만 사용하며 여기에 접두사를 붙여 부정의 뜻이나 강조를, 접미사를 붙여 다른 품사를 나타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나쁜 bad', '훌륭한 excellent'와 같은 단어는 없애고 '안좋은 ungood', '매우좋은 plusgood'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명사와 동사에서 관련 있는 단어도 없앴는데, 예를 들어 '자르다 cut'이라는 단어를 없애고 '칼 knife'를 동사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조금이라도 정치적인 뜻이 생길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았는데, 예를 들면 'free'라는 단어는 '자유'라는 뜻이 없어지고 '결핍, 무첨가'라는 뜻만 남아있습니다.

신어와 우민화, 사상의 통제를 단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가 바로 'doublethink 이중사고'입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당이 고의로 역사 기록을 날조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이 과정이 매우 신속하고 체계적이어서 기존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공식 석상에서 한 연사가 유라시아와의 전쟁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연사는 연설 도중 당의 선전 내용에서 전쟁의 대상을 유라시아가 아닌 동아시아로 설정하여 연설하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그 연사는 단 한 번도 말을 멈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설을 이어나가는데, 어느 순간부터 적대적 대상이 동아시아로 바뀐 내용의 연설입니다. 그로부터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오세아니아가 유라시아와 전쟁 중이었다는 근거가 될 수 있는 내용은 단 하나도 남지 않고 소각되며, 모든 역사가 태초부터 동아시아와 전쟁 중이었다는 내용으로 재서술됩니다. 이렇게 자신이 기존에 알던 지식과 상반되는 내용을 즉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나아가 기존 지식과 상반되는 내용을 동시에 사실이라고 여기며 이 둘 중에 당이 선택하는 것이 곧 진리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이중사고'입니다. 작중 고위 당원이 주인공을 심문하며 "당이 원한다면 내가 이 자리에서 공중부양할 수 있겠지."라는 말을 하자, 주인공이 고민하다가 '만약 눈앞에 있는 당원이 공중부양한다고 자신이 믿고, 내가 그것을 보았다고 믿는다면 그것이 사실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중사고를 통해 인간이 감각으로 인식하는 사실까지 모두 동시에 부정할 수 있으며, 이로써 진정하게 당에 세뇌당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외부 (하위) 당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자신이 사는 사회의 체제에 반감을 가지게 되며 일탈을 꿈꾸게 됩니다. 우선 프롤들이 사는 동네의 골목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섀링턴 씨라는 늙은 상인에게서 몰래 노트를 산 후 일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문자로 기록을 남기는 일은 당에 발각되면 심한 형벌을 받을 수도 있는 중죄입니다. 이후에 다른 외부 당원인 줄리아와 몰래 만나며 연애를 하고, 섀링턴 씨의 낡은 가게 2층에 있는 빈방을 몰래 빌려 둘만의 비밀 공간으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체제에 대해 여전히 깊은 불만을 품고 있던 윈스턴은 줄리아와 함께 의심이 가는 내부 (고위) 당원 중 한 명인 오브라이언에게 속마음을 고백하고, 놀랍게도 오브라이언은 현 체제에 반기를 들 준비를 하는 'Brotherhood 형제단'이라는 집단에 대해 알려주며 INGSOC(영사)와 현재 세 국가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쟁에 대한 진실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는 책을 제공해줍니다. 오브라이언의 말에 따르면 과거 당의 일원이었으나 빅 브라더의 뜻에 반대해 도망친 당의 주적, 골드스타인 이라는 인물이 비밀리에 형제단을 이끌고 있으며, 자신도 형제단의 일원이지만, 형제단의 조직 구조나 총인원이 어느 정도 되는지 등 자세한 정보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줄리아와 윈스턴은 형제단에 가입하게 되고, 연애를 엄격히 금지하는 당의 감시를 몰래 피해 섀링턴 씨의 가게 건물의 빈방을 그들만의 아지트로 만들어 연애를 이어나갑니다.

그들이 비밀스러운 연애를 시작하고, 형제단에 대한 정보를 얻은 지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윈스턴과 줄리아는 그들만의 아지트에서 대화하던 중 갑자기 벽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게 됩니다. 곧장 사람들이 들이닥치게 되고, 그 뒤를 따라 겉모습과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 섀링턴 씨가 여유롭게 들어옵니다. 윈스턴은 섀링턴 씨, 아니 난생처음으로 보는 사상경찰의 모습과 공포에 빠진 줄리아의 모습을 보며 충격에 빠지고, 수용 시설로 끌려오게 됩니다. 수용 시설에 끌려오는 사람들은 이미 당에서 관련 기록을 전부 제거해 '무인'(unperson,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 신어. 사상경찰에 끌려가 '무인'이 되면 역사적으로 해당 인물은 아예 존재한 적이 없는 것으로 기록됩니다. 반대로 역사를 조작할 때 끼워 맞추기 어려운 부분을 메우기 위해 가상의 인물을 하나 설정한다면 그 순간부터 역사적 인물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인데, 업무 도중 윈스턴은 이런 방법으로 "오길비 동무"라는 인물을 역사에 추가한 적이 있습니다. '무인' 처리가 된 것을 사람들은 증발했다고도 표현합니다.) 처리를 하였기 때문에 온갖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고문과 심문이 이어집니다. 곧이어 오브라이언이 나타나 윈스턴을 심문하게 됩니다. 윈스턴은 처음에는 당의 정책과 현 체제에 대하여 날 선 비판을 쏟아냈지만, 사정없이 이어지는 전기충격으로 고통 뿐만 아니라 뇌에도 영향이 가해져 조금씩 당의 지침에 굴복하기 시작합니다. 수없이 많은 폭력과 고문이 가해지고, 오랜만에 강제로 거울에 비친 끔찍한 자신의 몰골을 보게 된 윈스턴은 또다시 정신이 무너져내립니다. 당은 오세아니아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완벽한 정신적 통제를 원하기 때문에 죄수들을 완전히 당의 바람대로 교화한 후 사형하는 방침을 택하고 있습니다. 윈스턴은 의식과 기억 중 상당한 부분이 세뇌되고, 이미 줄리아와 있었던 연애와 형제단에 가담하려 시도했던 일 등 모든 것을 털어놓았지만 아직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줄리아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알아챈 오브라이언은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 위해 윈스턴을 101호실로 데려갑니다. 101호실은 각 죄수가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을 극대화해 직면하게 하는 고문실입니다. 윈스턴은 쥐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가지고 있는데, 오브라이언은 사납고 굶주린 육식성 쥐가 들어 있는 철창을 가져옵니다. 그 철창은 중간에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고, 한쪽에 쥐들이 있고 한쪽은 뚫려 있어 비어있는 구조로 되어있었습니다. 오브라이언은 비어있는 부분을 가면처럼 윈스턴의 얼굴에 씌운 후, 천천히 칸막이를 제거하여 쥐들이 산 채로 윈스턴의 얼굴을 갉아 먹도록 합니다. 칸막이가 열리기 전 마지막 순간, 윈스턴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 형벌을 줄리아에게 대신 내리라고 애원함으로써 줄리아를 배신하고 남아있던 인간성까지 완전히 말살됩니다.

윈스턴은 당의 강령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자아가 말살된 채 언제 당에 의해 죽을지 모르는 상태로 연명하게 됩니다. 그는 같은 방식으로 고문을 받은 줄리아와 이후 다시 접촉하게 되지만, 이미 둘 다 정신이 무너져내린 상태였기 때문에 과거 관계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허무한 만남으로 끝나게 됩니다. 윈스턴은 술을 들이켜며 행복한 상상을 하기 시작하는데, 그 상상의 내용은 아는 모든 사람을 공범으로 만들고 죄를 고백함으로써 영혼이 정화된 후 간수가 나타나 그가 오랫동안 갈망하던 총알을 그에게 발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간결하면서도 절망적인 문장으로 소설을 마칩니다. "He loved Big Brother.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책을 읽으며 윈스턴이 고문받는 단계까지도, 어디선가 반전이 일어나 당이 무너져내리지 않을지, 어떤 방식으로든 주인공이 이를 극복해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상황은 너무나 절망적이었지만 무너져 내리면서도 끈질기게 버티는 윈스턴의 정신이 독자로써 이런 기대를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한 단계 한 단계 망가져 가는 주인공을 보며 그런 희망은 점점 가슴 아픈 절망으로 변해 갔고, 결국 완전히 당에 굴복해버린 윈스턴을 보며 절망과 끝없는 허무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결말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다가 서서히 공포가 느껴졌습니다. 작중 당이 바라는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해 맹목적으로 당에 충성하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만을 남겨두는 것이었습니다. 텔레스크린을 통해 사람들을 감시하는 것 역시 이러한 목적을 위한 활동의 일환이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강제가 아닌, 자발적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거부하며 텔레스크린에서 나오는 시청각 자료만을 소비한다면, 그리고 모든 공간에 설치할 필요 없이 모든 사람이 소형 텔레스크린을 소지하고 다닌다면 어떤 사회가 만들어질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과연 <1984>가 그저 소설에 불과할까요, 아니면 미래에 대한 중요한 경고를 담고 있는 메시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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